제267화
두 자매는 이제 더는 어릴 적처럼 두려움에 침묵할 나이가 아니었다.
온채하는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힘겹게 말을 꺼냈다.
“응. 우리 엄마 이름은 온세현이야. 온 교수님의 딸이시고... 온 교수님은 네 외할아버지야.”
하지만 그제야 온채하의 머릿속을 스친 건 불과 이틀 전에 외할아버지와의 첫 만남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장면이었다.
뿜어져 나온 붉은 피는 아직도 온채하의 뺨에 찍혀 있는 듯 선명했고 아무리 씻어내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온 교수님은 좋은 분이었다.
자기 딸이 사라진 뒤에도 끊임없이 도움을 청했고 해마다 빠짐없이 돈을 보내왔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이치대로만 굴러가지는 않았다.
가는 실이 먼저 끊어지듯 세상은 늘 가장 약한 데부터 무너졌다.
눈을 감던 마지막 순간, 온형주는 세상이 내준 숙제가 얼마나 가혹하고 허망한지 절망했을 것이다.
온이윤은 전날 밤 내내 울다 지쳐 눈이 심하게 부어 있었고 떨리는 손끝으로 숟가락을 쥔 채 간신히 침을 삼켰다.
“예전에 엄마가 내게 말했어. 기회가 되면 꼭 너를 데리고 도망치라고. 근데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리가 없잖아. 그래도 엄마의 그 말은 늘 책임처럼 내 머릿속을 짓눌렀어. 엄마는 내가 정말 좋아했던 분이야.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도 항상 나를 볼 때마다 따뜻하게 웃어줬어. 이름도 지어주고 우리가 탈출할 수 있는 길도 끝없이 고민하고 또 계획하셨지. 수없이 시도했고 수없이 실패했어. 하지만 그땐 우리가 너무 어려서 저놈들이 우리를 쓰게 여기지 않았어. 우리가 겁먹고 머리만 감싸 쥐면 그놈들은 그게 우스웠을 거야. 우리를 손쉽게 쥐고 흔들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겠지.”
온이윤은 말을 이어가며 울먹였다.
“나는 자꾸 생각해. 엄마가 정말 실패만 반복하다 그친 걸까? 아니면 나 때문에 결국 포기한 걸까. 난 엄마의 결심을 느꼈어. 쇠사슬이 박힌 창가 밑에 엄마가 손톱으로 새겨 놓은 흠집이 가득했어. 그 결심이 꺾인 게 나 때문이라면... 차라리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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