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9화
권이준은 단번에 유태진 얼굴에 스친 자조와 무너진 기색을 읽어냈다. 유태진 같은 남자가 이런 표정을 지을 정도라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태진의 목젖이 크게 한 번 움직였다. 그는 두 주먹을 꽉 움켜쥔 채 고개를 떨구었고 극도의 충격과 피로가 겹쳐 온몸이 무너져 내릴 듯 흔들렸다. 들이마시는 숨결마다 가슴이 막힌 듯 답답했고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비틀어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소리조차 없는 조롱이자 허무 그 자체였다.
이미 눈빛 속에는 잿빛으로 타버린 고통이 스며 있었지만 더는 한마디도 내놓지 않았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서운 기운은 날 선 칼날처럼 차갑고 예리해 곁에 서 있는 이조차 숨쉬기 힘들 정도였다.
심가희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유태진에게 변명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대신 권이준 앞으로 다가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눈빛에 담긴 뜻은 분명했다.
권이준은 곧 알아차렸다. 심가희가 원하는 건 자신이 박은영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 특히 유태진에게 박은영의 상태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말아 달라는 뜻이었다.
권이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의 일은 결국 환자 자신의 몫이었고 남이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시간을 확인한 권이준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수술이 하나 더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박은영 씨가 깨어나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권이준이 박은영 몸에서 빼낸 주사기는 이미 처리되었고 안에 들어 있던 약물도 확인이 끝났다. 임신부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성분이었고 박은영이 깨어나면 반드시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의심스러운 진료실의 상황도 병원에 보고가 끝났고 이제 후속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심가희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애초에 오늘 수술은 예정된 것이 아니었기에 모든 게 뜻밖의 사태였다.
권이준은 바쁘게 자리를 떴고 남은 심가희는 고개를 돌려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유태진을 바라보았다.
유태진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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