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1화
박은영은 전날 밤을 떠올렸다.
그때는 감정이 불안정해 아무런 이상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저 유태진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을 때 비를 흠뻑 맞아 온몸이 젖어 있다는 것밖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 외에 아는 바는 없었다.
유태진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그와 같은 위치에 선 남자는 재계에서 무자비한 결단력 없이는 외국 분가와의 경쟁 속에서 로열 그룹의 실권자 자리를 굳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원한을 사기도 했다.
유태진은 비즈니스에 있어 언제나 냉정하고, 자비가 없는 남자였으니까.
막다른 길에 내몰린 자가 같이 죽는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 순간 메일함에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
유태진이 보내온 그의 개인 자료였다.
당장 급한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뜻이었다.
한참 동안 자료를 살피던 박은영은 별다른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곧장 하수혁에게 짧게 답장했다.
[괜찮은 것 같아요.]
그녀는 이혼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직접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이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해보기로 했다.
때로는 남들의 조언을 필요로 하는 일도 있으니까.
어떻게 처리할지, 언제 처리할지… 지금은 그조차도 판단하기 어려웠다.
다음 날.
단정히 차려입은 박은영이 집을 나섰다.
문을 열고 보이는 또 다른 문을 스치자 하수혁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유태진은 언제나 그랬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기분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사람.
곧장 고개를 돌린 그녀가 망설임 없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곳은 비전 그룹 로비.
위층으로 올라가기 전,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거냐?”
고개를 돌린 순간 대기 구역에 앉아 있던 주명훈과 주해린 부녀가 눈에 들어왔다.
박은영의 눈빛이 순간 싸늘해졌다.
그러나 주명훈은 딸의 표정을 애써 외면한 채, 자애로운 미소를 띠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모르는 이가 보면 그를 다정한 아버지라 착각할 정도였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왜 집으로 오지 않는 거야? 지금 시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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