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4화
전날 밤, 일련의 사건 이후, 박은영은 유태진에게 더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박은영의 인내심을 무너뜨렸다.
“설마 크루즈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이러는 거예요?”
유태진은 아직 그 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수면 위에 올려진 일이었다.
아무 일 없던 척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박은영은 선수를 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때였다.
유태진의 입꼬리가 아주 희미하게 올라갔다.
그 의미는 도저히 짐작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박은영은 조용히 남자를 바라보며 느리고 평온하게, 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우린 성인이고, 부부였고, 그렇게 3년을 함께 했어요. 딱히 따질 필요도 없는 일이란 말이에요. 정 따져야겠다면… 유 대표님이 아니어도 전 이렇게 대했을 거예요. 당신한테 집착할 생각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요.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결과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아요.”
유태진이 뭘 걱정하든 박은영은 그녀의 확실한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남자가 눈썹을 치켜뜨며 낮게 말했다.
“난 보수적이라 너 같은 진보적인 사상은 이해할 수 없어.”
그 말에 박은영이 저도 모르게 헛웃음 쳤다.
‘지금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내가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하지만 그는 박은영의 진보적인 태도에 꽂힌 듯했고 박은영도 그걸 그냥 흘려보내지는 않았다.
그녀가 차가운 눈빛으로 되받아쳤다.
“글쎄요, 그런 말은 적어도 생각이랑 몸이 일치한 사람이 해야 믿을 만할 것 같은데.”
그 말은 분명히 유태진과 서연주 사이에 육체적인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겨냥하고 있었다.
박은영은 그날, 유태진이 식사 자리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해명한 일을 전혀 믿지 않았으니까.
유태진은 그 말속에 담긴 비웃음과 철벽같은 태도를 충분히 읽어 낼 수 있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내 침대 밑에라도 기어들어가 봤나 보지? 어느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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