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3화
유태진이 고개를 숙여 불만스러운 기색의 이금희를 바라보았다.
박은영이 세상에 노출된 일로 마음이 상한 듯했다.
다시 옛일을 꺼내는 것도 결국 손녀 며느리를 걱정해서였다.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할머니. 세 일이 어디 뜻대로 흘러가겠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때도 은영이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잖아요. 그 애는 언제나 자신을 희생하며 주위를 챙겼어요. 이제는 자기를 위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뭘 원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요.”
그 시절의 박은영은 외로운 아이였다.
상품 취급을 받으며 당혹과 수치, 두려움 속에서 모두가 만족할 때까지 자신을 그 속에 내던져야 했던, 그런 존재.
주씨 가문의 압박과 기대는 그녀를 옥죄는 족쇄가 되어 퇴로도, 의지할 곳도 전부 없애버렸다.
이금희가 순간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녀가 유태진의 말을 곱씹으며 사색에 잠겼다.
유태진은 더 말하지 않고 눈썹을 가볍게 까딱이며 웃을 뿐이었다.
“전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박은영은 거실에 앉아 잠시 쉬려 했다.
그런데 지민숙이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사모님, 이따 부인께서 옥상 테라스에서 같이 식사하시겠대요. 먼저 올라가 바람 쐬실래요?”
박은영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곳은 과거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곳이었다.
결혼 초, 남편이 퇴근하기를 기다리며 옥상에서 책을 읽다 잠들곤 했고 그럴 때마다 유태진이 그녀를 안고 내려왔다.
가끔은 함께 침대에 누워 아침까지 곁을 지켜주기도 했다.
박은영은 순간 가슴이 저릿해졌다.
그녀는 혼자 가지 않고 지민숙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지민숙이 어느 방 앞에서 멈칫하며 머뭇거렸다.
“사모님, 제가 오늘 방을 청소하다가 부속품을 떨어뜨렸어요… 괜찮으실지…”
박은영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자 지민숙이 곧 방문을 열었다.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건, 소문만 무성했던 아이 방이었다.
넓은 공간과 성별이 드러나지 않는 디자인.
한쪽엔 아기 침대가 놓여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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