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5화
배승연의 말은 무척이나 갑작스러웠다.
조용히 술을 들이켜던 정하늘이 액체를 내뿜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곧장 뜨악한 얼굴로 배승연을 쳐다보았다.
유태진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눈빛은 차갑고도 무심했다.
하지만 배승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며 나직이 웃었다.
“참 지루하네요. 몇 년 전에 내 고백을 거절하면서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땐 당신이 박은영과 결혼하기 전이었잖아요. 설마… 그녀는 아니죠?”
정하늘은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본능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려 앞으로 나섰다.
배승연이 고개를 기울이며 유혹적인 미소를 흘렸다.
“제발 박은영이 아니길 바랄 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유태진은 언제나 그랬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
배승연이 그토록 집착하며 들이댔을 때조차 눈길 하나 주지 않은 남자였으니까.
마지막에는 그녀의 정신마저 위태롭게 할 만큼 무자비했다.
배승연은 유태진의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거짓말이라 믿고 싶었다.
유태진 같은 남자가 사랑을 한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죠.”
그의 목소리는 흔들림조차 없었다. 언제나처럼 가차 없었다.
배승연은 이미 익숙했다.
예전의 유태진은 지금보다 훨씬 차가웠으니까.
“박은영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 궁금해서 그래요. 인터넷에 루머가 떠돌 때 어찌나 싸고돌던지… 만약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어쩔 거예요?”
배승연은 유태진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가만히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박은영이 그런 사진 때문에 음란한 연구원이라는 낙인이 찍히길 바라요? 그럴 바에는 깔끔하게 이혼하고 우리 배씨 가문과 손잡는 게 낫지 않겠어요? 박은영한테 배씨 가문만큼의 가치는 없어요. 잘 알잖아요.”
배승연은 유태진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그녀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증거는?”
유태진이 느릿하게 배승연에게 다가왔다.

Locked chapters
Download the NovelRead App to unlock even more exciting content
Turn on the phone camera to scan directly, or copy the link and open it in your mobile browser
Click to copy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