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6화

그 한마디 약속만으로도 엄태수는 목숨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는 엑셀을 더 세차게 밟았다. 도로 위에 다른 사람이나 차량이 없자 곧장 채시아가 탄 차량을 향해 돌진했다. 채시아와 운전기사 역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기사는 재빨리 핸들을 꺾어 피하려 했지만 그 택시는 상상도 못 할 속도로 들이받아 왔는데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차량은 크게 패이며 옆으로 전복됐다. 기사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채시아 역시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렸지만 아직 의식은 있었다. 얼굴에 피가 번지고 시야가 붉게 물들어가는 가운데, 채시아는 온 힘을 다해 문을 열고 몸을 끌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야구 모자를 눌러쓴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차창 밖에 나타났다. 그의 표정은 뒤틀려 있었고 눈빛은 이상했다. “살려...주세요...” 채시아는 이게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생각하고 본능적으로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엄태수는 망설임 없이 차 문을 잠가 버리며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난 널 구하러 온 게 아니야.” 채시아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귀에서는 ‘웅’ 하는 소리가 울렸다. 엄태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널 죽이러 왔어.” “전 당신을 몰라요.” 채시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였고 원한을 품을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왜? 엄태수는 차창에 등을 기댄 채 그녀를 내려다보며 비웃듯 말했다. “왜 그런지 알고 싶어?” 채시아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잘못한 게 있다면 수아를 괴롭힌 죄지.” “임수아랑 무슨 사이인데요?” 채시아는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난 걔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걔 남자라고.” 엄태수는 또박또박 내뱉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채시아는 며칠 전 임수아가 윤성빈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임수아는 사생팬이 집까지 쫓아왔다고 말했었다. “임수아 팬이에요?” 채시아는 조심스레 떠봤다. 가끔 도 넘는 팬들이 사고를 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엄태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