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화

윤성빈은 긴 다리를 뻗으며 천천히 1층으로 내려왔다. 소파 곁에 다가가 보니 채시아는 아직도 얼굴에 눈물 자국이 선명했고 두 손은 꽉 쥔 채 경계하듯 소파 끝에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실내는 에어컨이 강하게 틀어져 있었기에 윤성빈은 살며시 손을 뻗어 담요를 채시아 위에 덮어주었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배달시키려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현관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임수아가 아침밥을 손에 들고 하이힐을 신고 들어왔다. “성빈 오빠, 아침 사 왔어요. 오늘 회사 창립기념일이잖아요. 이따가 우리 함께 가서...” 임수아가 다 말하기도 전에 시선이 소파에 잠든 채시아에게 닿았다. 그 순간 임수아는 그대로 얼어붙었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이 커졌다. ‘채시아가 여기서 자고 있다니? 설마 두 사람이 밤새...’ 윤성빈은 졸린 눈으로 임수아를 바라보며 의아해하는 말투로 물었다. “넌 어떻게 들어온 거야?” ‘이렇게 조용히 들어올 수 없었을 텐데. 보안 시스템을 통과했다면 지문이나 얼굴 정보를 추가해 둔 게 틀림없어.’ 임수아는 손에 들고 있던 아침 봉투를 꽉 쥐며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아줌마가... 제가 오빠를 돌볼 수 있게 출입 등록해 주셨어요.” 예전에 김예화가 손자를 보겠다고 임수아의 정보까지 청림 별장 출입 시스템에 등록해 두었다. 그래서 임수아는 언제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오늘에서야 처음 별장에 오게 됐다. 사실 어제는 슬아한테 연락하려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포기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임수아는 한동안 채시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빈 오빠, 이건...” “나가서 얘기하자.” 어젯밤 채시아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방금까지도 푹 쉬고 있었으며 보청기도 끼지 않아 두 사람의 대화 소리에 깨지 않았다. 임수아는 윤성빈을 따라 밖으로 나가며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눌렀다. “채시아가 소파에서 잤다는 게 말이 돼요?” 윤성빈은 담담하게 담배를 꺼내 들며 말했다. “내가 다시 들어오라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