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0화

또한 진승현의 사과에 따라 그를 용서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진승현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녀의 옆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처음으로 남한테 부탁하는 게 이리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진기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박은영에게 감사를 전했다. “박은영 씨, 그동안 많이 억울했겠어요. 앞으로 저놈이 또 실례를 한다면 나한테 말해주세요. 내가 대신 혼내줄게요. 제가 저놈 대신 사과드릴게요. 이제부터 무슨 일이 있으면 직접 저한테 오세요.” 하수혁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술잔을 들고 진기철에게 술을 권했다. “별말씀을요. 이건 저희 비전의 영광입니다. 저희도 한 아가씨의 명성이 걸린 문제라 이 자리에서 얘기한 겁니다. 어르신을 일부러 불쾌하게 한 것이 아니에요. 양해해 주십시오.” 진기철은 하수혁의 말뜻을 이해하고 그를 가리키며 웃었다. “하하, 똑똑하네요.” 결국은 그들이 진기철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 되었고 그들은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았다. 건배를 끝으로 한 가지 일이 해결되었다. 박은영도 날이 선 모습을 거두고 평소의 온화하고 모나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늘 사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진기철처럼 지체높은 분을 너무 몰아붙였다가는 오히려 경솔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억울함을 털어놓으면서 진기철의 체면까지 세워줬으니 박씨 가문이 그들한테 은혜를 입은 셈이었다. 하태민은 정말 화가 났는지 밥도 먹지 않았고 진기철과 진승현이 떠날 때까지 배웅하러 나오지도 않았다. 진기철은 그제야 고집이 센 늙은이의 미움을 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는 하씨 가문을 나섰다. 한편, 진승현이 반응하기도 전에 진기철은 아들의 종아리를 세게 걷어찼다. “이제부터 말조심해. 또 한 번 이런 일이 생기면 어디 가서 이 진기철의 아들이라고 하지 마.” 진승현은 저녁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고 아버지한테 한 대 얻어맞고 나니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 나이에 아들을 더 낳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