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박윤성이 다급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지연아.”
그가 부르는 목소리는 전에 없이 부드러웠다. 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그를 쳐다봤다.
“이혼 서류 가져온 거야?”
박윤성의 미소가 순간 굳었지만 이내 다시 태연한 척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러더니 어디선가 커다란 장미꽃다발을 꺼내 들었다.
“지연아, 이거 마음에 들어?”
주변에서 일제히 감탄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익숙한 회사 동료들이었고 나는 요즘 기억 문제 때문에 그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고 지내고 있었는데, 박윤성이 이렇게 진부한 방식으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나 장미 안 좋아해. 제일 싫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꽃다발을 본 순간 가슴 한구석이 두근거린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장미를 좋아했었나?’
조금 놀라웠다. 열여덟 살의 나는 꽃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자 점점 불편해졌고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만 가. 사람들 보기 전에.”
그런데 박윤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나는 하는 수 없이 그의 소매를 끌어당겼다.
“조용한 데서 얘기해...”
결국 그는 나를 차에 태웠고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레스토랑 안에 앉아 있었다.
“나랑 식사 한 끼만 해줘.”
박윤성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지만 눈빛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럼 밥 먹고 나면 이혼해 줄 거야?”
박윤성은 말이 없었다.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밥 안 먹어주면 나 이혼 안 할 거야.”
“좋아. 그 말 네가 한 거야.”
나는 얼른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그는 꽤 공을 들인 모양이었다. 와인에 촛불, 형형색색의 꽃장식까지 전형적인 로맨틱한 코스 요리였다.
배는 부르지 않았지만 보기엔 예뻤다.
나는 빠르게 식사를 끝내고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다 먹었으니까, 이제 간다.”
일어서려던 순간 박윤성이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지연아... 혹시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 안 나?”
“...무슨 날인데?”
나는 어리둥절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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