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불빛은 박윤성의 얼굴을 절반밖에 비추지 못했다. 반쯤 어둠에 가려진 그의 얼굴은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며 점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힘들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이 멈춘 게 아닌지 의심할 때쯤 박윤성의 눈빛에서 내가 원하던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는 나를 다시 봤다는 눈빛을 하고는 가볍게 웃었다.
“지연아, 설마 요즘 고인우와 짜고 무슨 짓거리를 벌였다고 할 건 아니지?”
박윤성은 웃고 있었지만 나는 소름이 쫙 끼쳤다. 부정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인정했다.
“그래. 다 내 아이디어야.”
며칠 동안 꾹 참았던 것도 다 이날을 위해서였다. 박윤성에게 어떤 일은 돌이킬 수가 없다는 걸 알려주고 이혼하지 않으면 두 사람 다 다치게 될 거라는 걸 말해주려 했다.
“좋네. 아주 좋아.”
그는 별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연속으로 좋다는 말만 내뱉더니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가 어떤 표정인지 보지는 못했지만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분노를 느꼈다. 어쩌면 실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내가 한 실망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박윤성은 그날 그렇게 떠난 뒤로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나에 대한 금지령도 풀어준 덕분에 단궁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지만 그래도 여기 남아있기 싫어 이튿날 바로 그곳을 떠났다.
떠나는 날에도 나를 막아서는 사람은 없었다. 고인우가 준비해 준 차를 타고 떠나려는데 나는 멀지 않은 곳에 브라부스 한대가 서 있는 걸 보았다. 나는 나뭇잎으로 가려진 그늘에서 익숙한 그림자를 발견했지만 더는 머물지 않고 운전기사에게 출발을 알렸다.
나는 이 결혼이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박윤성이 이혼 서류를 보내왔다. 조항을 읽어보니 대부분이 내게 유리했고 평생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말큼의 주식도 함께 적혀 있었다.
나는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고인우가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인하고 싶으면 사인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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