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온시연의 얼굴빛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 무언가 떠오른 듯 말을 더듬기 시작한 그녀는 겨우 입을 열었다.
“내, 내가 뭘 숨긴다고 그래? 오히려 너야말로 남의 남편을 뺏어놓고 어떻게 이렇게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나올 수가 있어?”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갸웃이며 모르는 척 되물었다.
“응? 내가 누구 남편을 뺏었다고?”
온시연은 비웃음을 머금은 채 냉소적으로 말했다.
“왜, 그런 짓은 해놓고 정작 인정할 용기는 없는 거야? 여기에 네가 무슨 짓 했는지 모르는 사람 있긴 해? 형부 꼬드긴 것도 사실 아니냐고.”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부드럽게 반박했다.
“그래? 근데 말이야... 내가 알기로 넌 아직 결혼 안 했잖아? 남편은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그 한마디에 온시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녀와 박지한의 혼사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는 건 이미 이 바닥에선 은근한 화제였다. 박씨 가문의 체면 때문에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해버리자 이 자리에 모인 상류층 부인들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돌아가서는 분명 온시연에 대해 온갖 뒷말이 오갈 것이다.
온시연이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듯 분노를 터뜨리려던 그때, 한미애의 날카로운 눈빛이 조용히 그녀를 향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상관없지만 자기 며느리만큼은 품격을 잃어선 안 된다는 게 그녀의 기준이었다.
속이 들끓어도 온시연은 그 시선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더는 자극하지 않고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
한미애가 곁에 있는 이상, 다른 부인들도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연회장 안엔 묘한 침묵이 흘렀고 나를 향한 은근한 배척의 분위기가 퍼졌다.
사실 나도 조예선에게 괜한 민폐를 끼치고 싶진 않았다.
처음부터 온시연이 나를 피하기만 했어도 이런 자리에까지 일부러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아 연회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혼자 앉아 있으려니 지루함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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