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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0화

세 사람이 식당에 도착하자, 수민은 먼저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구연이 주문을 끝낸 상태였다. 수민은 목을 빼고 기다리며, 옆 테이블에 놓인 음식들만 봐도 군침이 돌았다. 드디어 음식이 차례차례 상에 올랐을 때, 수민은 순간 얼어붙었다. 불낙지, 매운 꼬막 비빔밥, 엽기떡볶이, 실비 김치 등 온통 매운 음식뿐이었다. 구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셋인데 여섯 가지면 충분하지?” 유민이 젓가락을 들며 맞장구쳤다. “충분하죠.” 수민은 금방이라도 울 듯 입술을 삐죽였다. “이모, 일부러 그러신 거죠?” 자신이 매운 걸 못 먹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 하나같이 매운 음식만 시켜 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구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도 야채는 시켰어.” 그러곤 향이 진한 표고버섯 청경채 볶음을 수민의 앞으로 밀어주었지만 버섯 냄새조차 못 견디는 터였다. “다른 거 하나만 시키면 안 돼요?” 수민은 애원하듯 구연을 바라보자 구연은 잠시 이마를 찌푸리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미안해, 수민아. 오늘 하루 종일 놀았더니 예산을 이미 넘어섰어. 다음에 내가 맛있는 거 꼭 사줄게.” 유민은 수민의 구겨진 얼굴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났다. 구연은 눈짓으로 유민을 제지하자, 그는 얌전히 앉아 젓가락을 들더니 말했다. “야채 있잖아. 괜히 까탈 부리지 마. 다 네 엄마처럼 네 입맛 맞춰주진 않아.” 그 말에 수민은 결국 멘붕이 왔고, 눈물이 와락 흘러내려 고개를 숙였다. 비록 공부 문제로는 엄격하게 몰아붙이는 엄마였지만, 생활만큼은 세심하게 챙겨줬다. 이렇게 밥상 앞에서 서러운 마음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유민은 수민이 우는 걸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젓가락으로 생선살을 떠서 건네며 말했다. “그렇게 맵진 않아. 한번 먹어 봐.” 수민은 입에 넣자마자 혀끝이 타들어 가는 듯 화끈거렸고, 급히 기침을 해댔다. 이에 구연은 휴지를 건네며 차분히 말했다. “맵게 못 먹겠으면 그냥 야채 먹어.” 수민은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엄마한테서 아직도 전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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